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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닭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2015. 11. 22. 14:04   이따구 정치판

    YS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일 새벽 향년88세의 나이로 서거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 했던 분이다.

    아직도 군정종식독재 타도라는 우렁찬 구호 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다.

    3당 야합과 IMF외환위기 이전 까지 그는 모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의대상 이였다.

    어찌 되었든 그는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민주화 대열의 선봉에서 온몸으로 투쟁한 민주열사 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슬 퍼른 박정희의 독재정권마져 가장 두려워 했고 불편해 했든 인물중의 한명이다.

    김대중전대통령은 가택연금보다 더한 옥고와 납치와 고문등 수없는 테러와 린치를 당했 었지만 김영삼에게는 가택연금이상의 린치는가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그가 영남권 인물이였기 때문 이였을 것이다.

    호남을 대표했든 김대중전 대통령과 더불어 영남을 대표 해 민주주의 선봉에 섰든 인물이 김영삼전대통령 이였다.

    박정희역시 자신의 정치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지역이 영남이였고 이런 영남권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였든 김영삼을 심하게 다룰수 없었던 것이다.

    영남지역 마져 자극 한다는건 차칫 모든 국민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 일이 되기에  그랬을 것이다.


    군부의 손에의해 몇번 가택연금이 되고 자유를 박탈 당하면서 그가 외쳤든 명언이 바로 "닭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명언 이다.

    "닭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길을 선택 하지 않고 잠시 죽는것 같아도 영원히 사는길을 택할 것입니다"


    1979년 10월4일 박정희는 가장 강력한 정적중 한명 이였든 김영삼 신한 민주당 총재가 뉴욕타임즈와 박정권의 독재와 인권유린등에 대한 대담을 한것을 문제 삼아 헌정사상 최초로 김영삼의원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하고 가택연금을 시켜 버리게 되는데 이때 그가 던졌든 민주화에 대한 강한 희망의 메세지로 민주화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 어록으로 기록 될것이다.

    그는 떠났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그가 1998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낭독한 퇴임사의 서문중 한 구절이다.

    그는 이제 이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영원한 세상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1987년 6.10 항쟁 당시 선두에 나서서 국민들을 이끌면서 호헌을 철폐시키고 직선제개헌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신한민주당민주공화당과 더불어 군부정당인 민주정의당과 손을 잡으며 3당야합을 했다는 국민적 원성속에 대통령병에 걸린 인물로 명예가 급전직하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1993년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긴세월 갈망하든 군정이 종식되고 민주주의를 완성한 순간 이였다.

    문민정부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오랜동안 관습적으로 통하든 권위주위를 타파했다.

    모든 공공기관과 권력기관들도 민주라는 이름으로 권위가 청산되고 국민들이 우선시 되는 시대로 탈바꿈해 나갔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했고 군부 깊히 뿌리 내려 군부독재를 떠받치든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와해 시켜 정치군인이 다시는 이땅에 발을 들일수 없도록 군을 개혁 했다.

    지방자치제를 실시했고 5.18 광주의거를 재조명하여 민주화운동으로 5.18기념일을 재정해 명예를 회복 시켰으며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탄압한 책임을 물어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투옥 시켰다.

    예술인들의 정치비판을 허용 하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 하였다.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명문화 하고 옛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시켰다.

    일상 생활속에서 두드러지게 변화를 느낄수 있었든 부분으로는 이전까지 강압적이고 고압적 이든 경찰들의 국민에 대한 자세의 변화 였다.

    경찰이라면 그 제복만으로도 국민들이 위화감을 느꼈을 만큼 고압적 이였었다.

    문민정부 들면서 경찰의 이러한 자세를 민주경찰적이지 못하다는 정권의 의지로 완전히 일소 해버렸다.


    그러나 그의 이런 위대한 민주화의 공로를 일시에 덮어 버린 두가지의 큰 실책으로 그는 국민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3당 야합으로 고질적인 친재벌 보수정권인 새누리당을 탄생 시켰고 

    IMF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실정으로 그는 퇴임후 내내 국민들로부터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그가 파란만장 했든 격동의시대 굵은 한획을 그으며 대한민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비록 그의 과오와 실정이 적지 않지만 그가 남긴 민주화의 업적은 높이 평가 되기를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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