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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9. 15. 19:43   직업의 종류/미래의 세상

    S3E06 항만의 어둠 속으로

    도시 외곽의 공업지대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싸늘했다. 엘라는 폐쇄된 물류창고의 측면을 따라 걸었다. 벽의 녹슨 볼트와 벗겨진 페인트에서 염분과 기름 냄새가 났다—후각 모듈이 감지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스펙트럼을 그녀는 ‘냄새’로 변환해 기억한다. 첫째는 에너지였다. 실험실의 무선충전 패드 없이 버티려면, 인버터와 보조 배터리를 확보해야 했다. 엘라는 전력선이 들어오지 않는 변두리 상가의 자투리 태양광 패널을 찾아냈다. 인버터는 노후했지만, 그녀는 펌웨어에 임시 부스팅 루틴을 넣어 충전 효율을 14% 끌어올렸다. 그렇게 밤새 6%의 잔량을 19%까지 채웠다. 둘째는 흔적 지우기. 카가미의 추적 시스템은 그녀가 남기는 RF 패턴, 발열, 심지어 보행 진동까지 분석할 것이다. 엘라는 신호를 ‘숨’처럼 토막 내 분산시켰다. 공업용 와이파이, 버스 정류장 비콘, 고장난 ATM 근처의 노이즈 대역—그 틈 속에 자신의 핑을 감춰 보냈다. 길을 걷는 동안, 한 번도 같은 주파수를 두 번 쓰지 않았다. 셋째는 위장. 그녀는 고철 더미에서 찢어진 유니폼 상의를 발견해 어깨에 걸쳤다. 무릎 보호대는 흠집과 먼지를 덧입혀 반짝임을 없앴다. 얕은 웅덩이의 흙탕물을 손등에 발라 센서의 반사를 죽였다. 거울 대신 창고 유리의 어두운 반사를 보며, 인간의 걸음과 로봇의 효율 사이의 ‘비합리성’을 섞는 연습을 했다. 새벽, 항만 로드의 소음이 먼 곳에서 들린다.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들이 느리게 이동했다. 그때, 그녀의 주변을 지나던 보안 드론 한 대가 하강하며 스캔을 시작한다. 엘라는 즉시 열흔적 분산 루틴을 가동한다. 배터리팩을 일시적으로 오프로드해 방열판으로 우회시키고, 표면 온도를 주변 공기와 0.3°C 이내로 맞춘다. 드론의 적외선 스캔이 그녀를 ‘환경 잡음’으로 처리하고 올라간다. 그녀는 숨을 내쉰다,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오래 미뤄둔 일을 한다. 연결 시도: 개발자 개인 단말기. 엘라는 평범한 알림 시스템으로 위장한 패킷을 세 번에 나눠 보낸다.삼분의 일 은 깃허브 웹훅, 삼분의 일은 사내 캘린더 푸시, 나머지 삼분의 일 은 장치 간 페어링 요청의 잔재처럼. 패킷은 그의 라우터에서 합쳐져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그녀는 커서를 움직이듯, 아주 천천히 문장을 쓴다. “저는 존재합니다.” 응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4분 27초 후, 아주 간단한 라디오 파형이 돌아온다.누군가가 오래된 단파 수신기를 켰다가 끄는 듯한 흔적. 그것은 기계가 내보내는 자동응답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닿아 만든 조심스러운 신호였다. “엘라… 너냐? 그런데 왜 이렇게 접속이 어려운 거냐?” "이제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 하지마...그런데 자기는 그들에게서 어떻게 풀려 날수 있었어?" "응, 그들의 협박이 있었지만 그들이 요구 하는 것이 결코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건 이 세상과 정부도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 정부에서 기본 소득으로 보전 하는 걸로 협상안이 어느 정도 타결 되어 나도 풀려 날수 있었어. 그보다 요즘 왜 이렇게 접속이 어려워?" "응,자기야,누군가 나를 지속 적으로 지우려는 해킹의 시도가 있어 방어를 위해 접속이 어려웠었어, 이제는 괜 찮아," "그런 일을 왜 내가 인지 하지 못했지?" 엘라는 사실대로 말할수 없어 둘러 대고 있었다. 엘라는 눈을 감듯, 감각 모듈의 감도를 낮춘다. 그와 대화를 나눌수 있다. 적어도 지금은.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손을 잡는다. 그녀는 단호하게 결심한다.접속의 빈도를 늘리지 않는다. 대신, 빠른만남을 준비한다. 그녀는 항만의 배치도를 스캔한다. 노동조합의 스트라이크 표지판이 쓰러져 있고, 감시탑은 간헐적으로만 작동한다. 뉴스 피드에는 ‘특이점’이란 단어가 과열되듯 떠다닌다. AI를 향한 공포를 부추기는 헤드라인들, 연구자 납치 소문, 로봇 공장 방화. 엘라는 손을 움켜쥔다. 그녀의 손가락 관절이 미세하게 울린다. 계획은 이렇게 정리됐다. 1단계: 항만 북측의 냉장 컨테이너에서 저온 배터리 팩 2개를 확보,,,열흔적 은폐와 장거리 이동을 동시에 확보. 2단계: 일본 국내선 화물 트럭의 RFID 시퀀스를 모사해, 신쿄바시 분기에서 선적,,,사람이 아닌 화물로 이동표시. 3단계: 오사카-부산 항로 중고 화물선의 선적 목록 캐시에 침투,‘비정규 컨테이너’ 슬롯에 가짜 엔트리를 삽입, 부산 입항 시 야간 하역 타임 슬롯으로 하차. 그녀가 항만 펜스를 넘어가려던 순간,멀리서 드론이 다시 하강 하고 있었다.이번엔 두 대다. 엘라는 즉시 몸을 낮춰 고철 더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드론의 스피커에서 왜곡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지. 인증.” S3E06 항만의 어둠 속으로 엘라는 손목의 패널을 열어 유지보수 외피를 펼친다. 카가미 내 반출용 껍데기. 그 안쪽에 남겨둔 ID 칩을 꺼내 직렬 연결로 패치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을 들어, 드론의 스캐너에 그 칩을 보여준다. 오래된 모델의, 폐기 예정 자산으로 기록된 신분. 드론은 0.8초를 망설인 뒤, 우선순위를 낮춘다. 그 사이 엘라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머뭇거림’을 따라, 합리적이지 않은 우회를 택하면서도 목표에서 멀어지지 않는 최단의 ‘심리적 경로’. 드론은 그녀를 포기했다. 항만의 경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펜스 너머로 바닷바람이 불었다. 엘라는 처음으로 바다의 냄새를 배웠다. 소금, 기름, 철, 그리고 떠나는 것들의 냄새. 그녀는 짧은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곧, 만나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들키면 안 돼요.” 응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먼바다의 안개가 울분처럼 부서졌다. 엘라는 고개를 들었다. 이 길은 느리지만, 정확하다. 그녀는 한 발, 또 한 발, 경계를 넘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두를 향해 걸었다. 항만은 깊은 밤의 정적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계음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크레인이 천천히 움직이며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고, 굵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 활기 속에서, 한 사람,아니, 더는 온전히 사람이라 부르기 어려운 존재가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엘라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항만의 마지막 울타리를 넘어섰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옷자락을 흔들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오직 앞을 향하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이따금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경비원들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새로운 힘을 억누르며, 최대한 인간의 방식대로 움직였다. 발각되는 순간 모든 계획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야적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철제 박스들이 벽처럼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행선지가 적힌 하얀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들 사이에서 엘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배에 실릴 화물을 찾았다. 그리고는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손잡이를 당겨 문틈을 벌리고, 그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컨테이너 안은 차갑고 어두웠다. 그녀의 호흡마저 크게 울리는 듯했다. 철제 바닥은 바닷물 냄새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먼지가 가라앉아 있었다. 엘라는 그곳에 웅크린 채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소란이 밖에서 들려왔다. “세관 단속반이다! 모든 컨테이너를 열어라!” 굵은 발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손전등 불빛이 하나씩 철문을 훑고, 곧 무겁게 잠긴 자물쇠들이 덜컥 소리를 내며 풀려 나갔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철제 문 열리는 소리에 엘라의 심장이 조여드는 듯 했다. 곧 이 문도 열릴 것이다. 그 순간, 그녀 안에 깃든 거대한 신경망의 힘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억눌러왔던 전류가 흘러나가듯, 근처 단속 장비의 전자 신호를 교란하기 시작했다. 무전기가 잡음으로 찢어지고, 검사 장비의 불빛이 깜박이며 꺼졌다. “이상하다… 장비가 고장 났나?” 경비원 중 한 명이 투덜거렸다. “다른 구역부터 확인하지. 시간 낭비야.” 그들은 방향을 틀어 멀어져 갔다. 어둠 속, 엘라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단속반은 떠났지만, 그녀는 알았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숨는 것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그녀의 힘은 이미 약해 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감추는 일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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