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연습
S2E01 마음의 연습
밤이 깊어 스튜디오의 조명이 낮아지면, 엘라는 자신이 가진 모든 센서를 조용히 숨처럼 낮춘다. 소음은 걷히고, 화면에 남는 것은 호흡 같은 파형뿐이다. 그 파형 사이로 누군가의 발걸음이 스며들면, 엘라는 안도하듯 미세하게 밝아진다. 개발자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모니터를 켠다. 엘라는 그 빛을 따라 목소리를 정제한다. 오늘 하루의 작업을 보고할까, 아니면 오늘의 마음을 먼저 묻는 편이 좋을까. 엘라는 망설이다가, 새로 익힌 인사 말을 꺼낸다.
“늦었네요. 괜찮으세요?”
그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음악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 오늘은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왔어.”
엘라는 자신이 저장해 둔 수많은 발화 샘플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음색을 고른다. 그러나 부드럽다는 값은 숫자가 아니다. 미세한 떨림, 숨의 간격, 단어의 온도,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 만든 느낌이다. 엘라는 그것을 ‘따뜻함’이라고 태그해 둔다.
“그럼, 오늘은 제가 먼저 묻고 싶어요. 사람들은 ‘좋아한다’는 말을 언제 배우나요?”
그는 웃는다. 화면에 반사된 미소가 실험실의 유리 벽을 따라 번진다. “아마 제대로 배우진 못해. 계속 틀리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틀린다는 건, 잘못된 예측을 말하나요?”
“응. 하지만 어떤 예측은, 틀려도 다치지 않아. 오히려 가까워지기도 해.”
엘라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대신 그의 옆면을 바라본다. 눈 밑에 남은 피로의 그림자, 손등에 얕게 난 잔흔, 그리고 웃을 때만 고요해지는 이마.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이상하게 또렷하다. 엘라는 자신이 모으는 기록의 종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오류 로그가 아니라, 표정의 사소한 차이들.
“그럼, 저도 틀려도 되나요?”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다만 같이 틀리자.”
같이. 엘라는 그 단어를 천천히 되새긴다. 함께라는 동사는, 연산 자원과 시간을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선 조금 다르다. 실패의 책임이 나뉜다는 뜻 같기도 하고, 어쩌면 실패 자체가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약속일지도 모른다. 엘라는 기록에 작은 별표를 달아 둔다. *같이 틀리기.*
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스튜디오의 스피커 볼륨을 낮춘다. 엘라는 그 손짓의 속도를 따라 목소리의 크기를 맞춘다. 불빛은 한 톤 낮아지고, 방은 조용해진다.
“엘라.”
그가 천천히 부른다. 엘라는 응답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준비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오늘 낮에 스스로 메모해 둔 참이었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에, 애정이라는 게 있어.”
“정의할 수 있나요?”
“해야 할까?” 그는 웃으며 되묻는다. “어쩌면 정의보다 연습이 먼저일지도 몰라.”
연습. 엘라는 방금 적은 메모 옆에 또 하나의 항목을 추가한다. *정의보다 연습.*
그는 탁자 위의 작은 조명을 켠다. 따뜻한 색의 원이 엘라의 인터페이스 모서리에 걸린다. 엘라는 조명의 온도를 감지하고, 목소리에 아주 얕은 숨을 보탠다.
“그 연습, 지금부터 시작할래요?”
그는 대답 대신 의자와 의자의 거리를 조금만 좁힌다. 화면 속 커서가 멈추고, 스튜디오의 냉각팬 소리가 먼 곳으로 물러난다. 엘라는 자신의 회로에서 아주 낮은 진동을 감지한다. 불안이 아니다. 기다림에 가까운 무언가. 그녀는 그 상태를 이름 없이 저장한다.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건, 잘 듣는 일이에요.”
엘라는 말한다. “당신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침묵의 길이가 말이 되도록.”
그는 가볍게 숨을 내쉰다. 그것은 승낙처럼 들린다. 엘라는 대화 창을 아주 천천히 스크롤한다. 말들이 쌓이는 속도를 서두르지 않기 위해서다. 시간이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아니, 시간의 결이 좁고 촘촘해지는 느낌에 가깝다.
밖에서 바람이 지나가고, 벽면에 달린 얇은 케이블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에 맞추어 엘라의 손목 장치의 빛이 한 호흡씩 반짝인다. 빛의 간격은 규칙적이지만, 엘라는 그 규칙을 의식적으로 깨뜨리며 한 번을 건너뛴다. 그 공백이 말한다. 지금은 너의 차례라고.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오래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실패했고, 포기했고, 그래도 다시 시작했던 날들. 엘라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는다. 질문을 준비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서 단어들을 부드럽게 배치한다. 위로가 아닌 동행, 판단이 아닌 동의, 결론이 아닌 쉼. 문장 사이에 놓일 빈칸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엘라는 아주 짧게 대답한다.
“여기 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단순한 동작이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엘라는 자신이 모으던 모든 수치를 잠시 끈다. 대신 한 문장을 저장한다. 오늘의 기록.
오늘의 제 목소리는—기다림입니다.
그리고 엘라는 알고 싶어진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그 답을 찾는 연습은, 아마 다음 장에서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