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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과서 국정화에 목숨건 친일기득세력들

    2015. 10. 11. 07:30   이따구 정치판

    1919년 3월1일 고종의 장례식을 기해 전국적인 규모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며 자주독립을 쟁취 하기위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 3.1 독립운동은 자주적이며 거국적 항거로써 세계유일의 비폭력 자주독립운동 으로 기록 되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을 기점으로 상해에서 활동 하든 독립운동가와 민족 지도자들은 그해 4월13일 임시정부를 수립하였고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에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위임통치 해줄것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몇차례에 걸쳐 보내게 됩니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단재 신채호선생은 이승만의 이러한 행위를 매국행위로 규정했고 결국 이 사건으로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게 됩니다.


    1945년 8월15일 히로시마에 미국이 투하한 2발의  원자폭탄으로 인해 일본천황 히로히토는 무조건 항복 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자주적 독립이 아닌 미국주도에 의해 해방을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임정은 대대적  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의 양성을 끝마치고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 였기에 자주독립을 꿈꾸어 왔든 김구선생을 비롯한 임정의 수뇌부들 로서는 허탈감에 사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외세의 도움으로 이룬 독립은 또다른 왜세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게 될것 이라며 김구 선생은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한 해방에 대해  대단히 안타까와 했습니다.

    결국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지배 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평소 미국의 위임통치를 바라든 이승만은 미국을 등에 업고 남한 단독정부의 대통령이 되어 자기의 야욕을 달성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하고 친일기득 세력들을 대거 중용하였고 동란을 전후해 대대적인 남한내의 반대세력과 정적을 축출하기위해 테러단체인 대한청년단과 서북청년단과 같은 친위조직을 결성하였는데 마치 요즘의 어버이 연합같은  관제 깡패조직들입니다.

    이들을 동원해 반대파와 정적들의 집회나 창당회장에 난입시켜 폭력으로 집회나 창당을 와해 시켜 버립니다.

    마치 요즘의 국정원 댓글부대나 십알단을 동원한 반대파나 정적을 사이버상으로 정치적 테러를 가하고 물타기하여 국민들에게 진실을 호도하는 양상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특히 동란을 전후해 정권을 반대 하는 양민들을 공산당의 부역자로 몰아 학살 하게 됩니다.

    제주4.3사건,여순반란사건,보도연맹원학살,거창양민학살,노근리양민학살,문경양민학살사건등이 그들이 양민들을 공산당부역자인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대표적인 사건들 입니다.

    양민학살의 시발점이 된 제주4.3항쟁은 일제에 부역한 친일행위자와 친일경찰을 단죄하지 않고 그자리에 그대로 두고 이용한 미군정과 이승만이 자신의 정권을 거머지기 위해 역사를 거스린 최악의 실정이 빚어낸 결과물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당시 경찰들은 고압적인 일제시대 경찰자세 그대로 시민들에게 횡포를 일삼았고  친일행위로 부호가 된 기득세력들은 떵떵거리는 것에 불만 이였든 도민들의 민심은 폭발 일보 직전 이였 습니다.

    그런와중에 1947년 3.1절 기념식장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인 어린이 사망사건은 당시 시민들의 이런 분노를 분출 시키게 되었고 경찰서 앞에서 시위와 궐기를 벌이게 됩니다.

    이것을 폭도로 몰아 발포하여 시위자중 6명이 사망  하였고 이소식에 분노한  전 제주도민들은 친일경찰과 일제 압잡이들의  집을 도륙하면서 일파만파 걷잡을수 없는 상태로 커지게 되었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든 남로당이 개입하면서 양상이 이념대립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얼마후 미군정을 등에 업고 출범한 이승만대통령은  공산당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묘 군대를 진주 시키고 무력 진압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수많은 양민들을 빨갱이 부역자로 몰아 학살 하였든 것입니다.

    결국 이사건은 여순사건으로 번지게 되었고 지리산일대로 확전 되어 공비토벌 이라는 명분하에 수많은 양민학살이 자행 되기에 이러릅니다.

    이모든 것이 이승만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미군정과 손을 잡고 벌인일로써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그대로 유지 시켜 극에 달한 미 소 강대국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철저한 반공의식을 주입시키기 위해 자행된 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양민에 가까운 국민방위군학살사건은 이승만의 친위대 테러집단인 대한청년단의 국민방위군보급품횡령에 의해 저질러진 대규모 사망 사건으로 총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9만여명의 방위소집자들이 아사와 동사로 미필적 고의에 의해 학살 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6.25를 전후해 사망한 사망자수는 대략 243만명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그중 전쟁으로 인해 직접 서로의 총칼에 사망한 숫자는 137만여명 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정권의 횡포와 이승만의 친위 단체인 우익단체들이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양민의 수가 106만여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양민으로 총 사망자의 절반 가량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공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주입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무차별 학살시킴으로써 추후 빨갱이에 대한 국민적 관점에 확실한 대못을 박았고 어떤 죄에 우선한 대죄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것은 일본에 철저히 부역해 같은 민족을 고문 학살  강제찬탈한 친일행위보다 더한 죄질로 인식시키면서 그 효과는 오늘날도 빨갱이라는 색깔론 만으로도 쉽게 반대세력들의 힘을 와해 시키는 작용을 하게 만들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당시 친일행위자들은 자신들에게 향하는 화살을 어디로든 돌리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였기에

    그 화살은 고스란히 공산당으로 향했고 그들은 이승만을 부추켜 빨갱이 몰이와 이념공세에 사활을 걸수밖에 없었든 것입니다. 

    그 결과 엄청난 양민학살이 자행 되어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승만의 반민특위 강제해산은 그의 행위중에 용서 받지 못할 반역사적 행위로 간주되고 있는 이유 이기도 합니다. 



    이승만은 6.25동란 중에 자신만 살려는 목적으로 끝까지 서울에 남아 국민들과 함께 한다는 거짓방송을 내보내어 피난민들을 안심 시킨후 자신은 몰래 한강다리를 빠져 나갑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진로를 차단 하기 위해 한강다리를 폭파 시켜 버립니다.

    이때 건너지 못한 수십만의 시민과 국군들이 생명을 잃게 됩니다.

    나라와 국민을 끝까지 지키고 책임 져야 할 대통령으로써 치졸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최근  그런 인물을 대한민국의 건국아버지로 추앙 해야 한다며 새누리당 김무성대표와 친일 기득권세력인 박근혜정권과 친일행위자 후손들의 모임으로 추정되는  뉴롸이트단체는 현재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 했습니다.

    이명박정부 에 이은 친일기득세력인 박근혜정부는 정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성토를 하는 인터넷 네티즌들과 커뮤니티 글에 그들의 관제 댓글부대를 동원해 물타기로 진실을 왜곡 또는 호도하고 노골적으로 이들을 종북빨갱이로 매도하므로써 그들의 힘을 무력화 내지 와해 시키 고자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유당시절 정치깡패인 관제 테러집단을 동원해 상대편 진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숙청하고 제거 하든 방법을 인터넷상으로 옮겨놓은 것과도 같은 양상이 현재의 친일 기득세력인 새누리당 에 이어 조금도 변함없는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인터넷이라는 무대가 바뀐것 뿐이지 그때의 관제 친위부대인 대한청년회 와 서북청년단 격인 국정원댓글부대나 보수연합 세력인 어버이연합, 십알단과 같은 친위부대와 혼맥으로 이어진 거대자본언론 그리고 정치검찰을 이용한 야당에 대한 탄압과 자신들의 실정이나 비리에 대한 물타기로 흐리는 것은 물론 이고 야당의 주장들과 바른소리들 역시 관제 언론들에 의해 걸러내 이슈화를 원천적으로 축소 내지 봉쇄해 버림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서 알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횡포는 그때와 조금도 달라진게 없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들이 원래의 언론 기능인 공공성과 공정성을 잃어 버리고 관제언론으로 정부의 앞잡이로 변질 되버린 방통법 사건은 그 무엇보다 중차대한 반민주적 사건 입니다.

    그러나 방통법으로 떠들썩 할때도 국민들은 시대가 어는 땐데 하며 별일 아닌 일로 치부 해버린 결과 나라는 헬조선화 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명박의 방통법사건은 친일 기득세력들간의 혼맥으로 이어진 금권의 합작품으로써 거대자본이 종편에 대거 진출 할수 있도록 새누리가 박터지도록 날치기통과 시켜 만든 사건으로 친일 기득세력들의 언론독식을 일삼을수 있도록 만든 중차대한 사건 입니다.

    야당과 국민들의 비판과 정당한 목소리를 원천봉쇄 하고 넘치는 찌라시정보들로 그자리를 대신해 물타기해서 채울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편도 모자라 지상파들 마져 낙하산 인사와 광고자본을 이용해 숨통을 조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길들이는데 성공 하드니 국내 양대 포탈마져 정치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해  검열을 일삼고 자신들  입맛에 맞도록 길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에 대한 횡포에 대해 항의성 포스팅을 기고 하는 네티즌들을 관제댓글 부대원들을 동원해 종북빨갱이로 몰아 부치고 있습니다.

    과연 저들이 말하듯 이런 네티즌들이 정말 북한을 추종 하거나 동경 할까요?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3대 세습독재공화국으로 고모부마져 잔인하게 총살하는 지상에서 가장 인권이 말살된 나라인 북한을 결코 동경 하거나 추종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학생과 젊은이들이 줄세우기식 무한경쟁속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으로 내몰려  헬조선 이니 뭐니 하지만 그럼에도 인권도 자유도 없고 굶주림으로 허덕이는 북한을 동경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 여겨 집니다.

    친일 기득세력들 역시 이러한 사실들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의 전신인 자유당의 독재자 이승만이 반대진영을 와해하고 제거할때  써먹든 종북 빨갱이 몰이가 무엇보다 그 파괴력이 크다는걸 알기에 그것을 그대로 답습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또는 선대의 친일행위로 인한 부끄러운 과거를 덮기위한 수단으로 정권에 반하기만 하면 모조리 종북빨갱이로 몰아 부치면 그어떤 설명도 사과도 필요가 없이 되버리니 이보다 더 간단명료한 해결책을 어디서 찾을수 있겠습니까?

    이제 갈수록 젊은 청년과 청소년 세대들에서는 과거 유신독재자가 만든 세뇌에서 벗어나 무엇이 역사의 가치관 인지를 알게 되면서 이승만으로 이어진 박정희와 새누리 그리고 김무성같은 인물들의 친일파들의 세뇌에 의해 만들어진 종북몰이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깨달아 가고  친재벌정권에 의해 북한보다는 낮다고 하지만 새누리가 다시 집권한 지난7년 반동안 의 국내 상황들은 미래가 초토화 되고 모든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려지고 젊은이들은 좌절과 패배의식이 팽배 해지고 친재벌 정권은 부의재분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므로 인해 극단적인 양극화로  부익부 빈인빈 의 고착화는 더욱 심화 되고  이들의 눈에도 이 정부가  어떻게 국민들을 취급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각성은 친일기득세력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로 인식 하고 이명박정권에 이어 박그네까지 반드시 다시 세뇌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안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과서국정화는 비박과 친박의 공천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중요한 사안 으로 인식하고그들이 그토록 공천룰로 서로 피터지게 싸우든 것도 멈추고 이 문제만큼에 대해서는 똘똘 뭉치는 것도 이런 그들의 근본적인 입지 문제 때문인 것 입니다.

    공천룰이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싸움이라면 국정화로 국민세뇌교육의 틀을 마련하는 일은 자신들의 미래 세대에 관여된 일로써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과거의 친일행위를 물려주는 일만은 결단코 막아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사실 지금도 이승만과 박정희에 의해 친일행적이 물타기로 많이 흐려지고 미화 되어진 상태 입니다.

    독일 같은 나라 였다면 이들은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어야 할 반국가적 인물들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들이 존재 함은 물론이고 정재계를 좌지우지 하는 기득세력이 되어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정권 들어 반민족세력의 척결을 눈앞에 두고 이들의 조직적인 금권과 기득세력의 힘에 밀려 정권을 빼앗겨 버림으로써 결국 오랜동안의 숙원은 무산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언론을 좌지우지 할수 있고 막강한 재력과 대통령이란 권력과 다수의 입법의원으로 무었이든 밀어 붙힐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이야 말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식세대의 운명이 달려 있는 중차대한 사안 임을 통감 하기때문에 피터지도록 싸울 것입니다.

    방통법을 목숨걸고 막아내지 못한 국민과 야당은 교과서 국정화는 정말 목숨걸고 막아내야 할 중대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박정희의 친일행각과 망국적 지역감정을 조장한 원흉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박정희는 제12대 대선에서 상대후보인 김대중후보와 투표를 앞두고 지지율조사를 벌인 결과 40대60이라는 절대적 열세 임을 알고  정권이 풍전등화에 몰리자 큰 고민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궁지에 몰린 그는 최측권의 참모와  함께 기가 막힌 묘수를 강구하게 됩니다.

    다음날 이들이 모의한 방법은 곧 실행에 옮겨 졌고 당시 대구 경북 지역의  대선후보 벽보에  "전라도사람들은 전라도 후보 김대중을 몰아 줍시다" 라는 캣치 프레이즈가 담긴 벽보가 나 붙게 됩니다.

    그들은 상대진영의 김대중후보의 이름으로 벽보를 만들어 붇히는 불법을 자행했고 지역감정을 자극한 이 벽보는 큰 효과를 발휘해 경상도 사람들의 지역감정에 불을 당겼고 경상도 사람들을 결집하게 만들었습니다.

    경상도의 인구에 비해 숫적으로 열세인 호남지역 사람들로서는 중과부적이였고  박정희가 조장한 지역감정은 자신의 독재권력을 지키는 수단으로 이용 되었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망국적 지역감정은 날이 갈수록 그 골이 깊어 갔고 급기야 1980년 5월18일 전두환의 광주시민학살 만행으로 그 골은 더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까지 이르러 버리게 됩니다.

    광주에 투입한 계엄군 모두를 경상도 출신 군인들로 투입 함으로써 지역감정은 망국적으로 치닫게 된것입니다.

    박정희는 어느정도 경제 재건을 이룩했다는 공 과 독재권력의 힘으로 과거를 조작해 자신의 친일행각을 덮어 올수 있었지만 그러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느 누구의 힘으로도 막거나 밀어 낼수 없듯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그동안 독재자들에 의해 숨기기에 급급하고 쉬쉬해오든 독재미화와 친일 행각은 만천하에 속속 들어나고 있습니다.

    세뇌를 받지않은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의 지식 커뮤니티를  통해 진실에 가깝게 접근 하게 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든 친일 행위자들의 면면과 망국적 지역감정은 독재자들의 정권유지 수단으로 인해 조장되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젊은층 들을 중심으로 한 진보 세력이 점점 자신들의 목줄을 죄어 온다는걸 인지한 친일 기득세력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친일행각을 덮기위한 작업으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작업에 목숨을 걸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제 망국적 지역 감정을 해소 하고 친일반민족 기득세력들의  과거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함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통해 골깊은 이념 전쟁을 끝내고 국론분열로 인해 소모되는 국력을 한데 모아 통일대한민국을 이룩 해 낸다면 우리나라는 일약  선진국으로 우뚝 솓아 오를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필자의 허황된 희망에 불과 하리라 봅니다.

    과연 후안무치한 저들이 사과와 반성을 통해 국민통합의 길을 선택할 까요?

    그런 의미로  선결적으로 진정한 반성과 사과없이 끝까지 교과서 국정화를 고집한다면 결국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수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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