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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창업주 이병철회장의 장남 이맹희씨 별세와 이건희 삼성그롭 회장 삼성의 빛과그림자

    2015. 8. 15. 17:45   티스토리 세상

    삼성의 빛과 그림자

    삼성 이병철 회장의 장남 전 제일비료 회장이 향년84세의 나이를 끝으로 그동안 앓고 있든 폐암 치료중 중국땅에서 사망 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비운의 황태자로 파란만장한 생을 영위하다 사망했다며 메스컴의 관심의 초점으로 부각 되면서 삼성가의 가계구도에 대한 궁금증까지 이어 지고 있는 것 같다.

    그에대해 항상 따라 다니는 수식어가 비운의 황태자였고 마지막 까지 그 수식어를 가지고 타계 한것 같다.

    그가 장남으로써 삼성을 물려 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이 수식어가 붙혀진 것일 것이다.

     

     

     

     

    물론 삼성가는 대한민국의 특별한 위치를 점한 가계임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서민들과 비교 할수 없는 호사를 누린 그를 비운으로 생각 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그리고 그를 궂이 황태자로 지칭 하여 차별화된 계급의식을 주입토록 하는 메스컴의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런식으로 떠들석하게 삼성가를 특권계급으로 추켜 세워서는 안될것이다.

    조금 더 가진 사람 이지만 평등한 인간이라고 생각 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 한다.

    그렇쟎아도 빈부의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화감 마져 억지로 주입해서는 안될 것 같다.

    대한민국 제일의 재벌가 삼성가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가계구도는 어떠한지 과연 재벌가에는 찬란한 영광만이 존재 하는 것인지 오늘 한번 파헤쳐 보도록 해야 겠다.

    마이다스의 손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경남 의령출신으로 입신양면 세계굴지의 삼성을 일으켜 세운 한국 제일의 재벌 창업주다.

    한때 그가 손 대는 것은 돈으로 바뀐다고 하여 돈병철 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1938년 일제시대 삼성상회라는 간판으로 시작해 1960년 초에는 사카린을 제조 하는 제일 제당을 설립해 일약 한국 제일의 부호가 된 인물이다.

    그는 슬하에 4남6녀를 두었는데 맹희, 창희, 건희,그리고 일본인 처에게서 난 이태희로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 지지 않고 있다.

    네 아들 중 장남 이맹희씨가 이번에 향년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삼성가의 가계 구도가 언론에 관심의 대상으로 대두 되고 있다.

    한때 삼남인 이건희와 삼성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다 아버지 이병철의 불신임을 받아 삼성그룹의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나 삼성그룹의 총수자리를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양도하고  한때 조용히 세상과 등진채 야인으로 지내다 부인의 안국화재 지분을 삼성의 창업기업인 제일제당 지분과 일대일 맞교환 형식으로 바꾸어 제일제당을 인수 운영하다 장남 이재현회장에게 물려주고 다시 야인생활로 주로 중국에서 여생을 보내다 폐암으로 어제 8월14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후계구도를 바꾼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

     


     

    그는 한때 사카린원료를 들여와 삼성을 거대 기업으로 키우는데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병철 회장의 신임을  받아 오든중 1966년 5월 에 터진 한국비료사카린 밀수사건 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이병철 회장 을 대신해 잠시 삼성총수자리에 올랐으나 이병철회장의 불신임으로 삼성일가에서 조차 내쳐진 신세로 전락 하고 만다.

    삼성정밀 화학공장의 전신인 한국비료공장의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이병철회장의 필요에 의해 벌여진 거대 밀수 사건으로서 비자금이 필요 했든 박정희와 한국비료공장에 필요한 고가의 현대식 기계 장비 구입자금이 필요 했든 이병철회장 이 두사람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최고의권력형 거대 밀수 사건이였다.

    당시 삼성이 울산에 건설하고 있든 한국비료공장 건설 비용으로 일본 마쓰이로 부터 4200만달러 차관을 하는 과정에서 마쓰이로 부터 100만달러의 리베이트를 받게 된 이병철은 박정희에게 사실을 알렸고 박정희대통령과 이병철은 100만달러라는 거액을 현금으로 받는 것보다 사카린원료를 밀수해서 판매해 자금을 부풀리기로 합의 하면서 정부의 비호아래 이맹희가 밀수 현장의 지휘를 맡아 2259포대(55톤)의 건설자재로 둔갑한 사카리원료를 밀수 하다 부산 세관에 의해 적발 되면서 세상에 들어나게 된 사건이다.

    사카린밀수 사건이 나라전체를 떠들썩 할만큼 큰 이슈가 된 것은 이사건이 박정희가 개입된 사건 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뒷소문으로 인지 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이율배반에 대한 국민적 분노때문에 이사건은 걷잡을수 없이 커지게 되었는데 당시 박정희는 담화를 통해 부패척결을 외치며 5대 악의 척결을 들었는데 그가 내세운 5대악 중에 하나가 바로 밀수였든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국민들을 향해 담화까지 한 밀수를 저지른게 알려 지면서 이율배반적인 그의 행각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 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더불어 당시 삼성이 설립하려고 준비 하고 있든 신문 매체인 중앙일보를 설립하려는데 반대한 경쟁사들의 여론전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점점 커지게 되었고 당시 재야 인사와 야당의 끈질긴 사건의 진상 추궁에 결국 사카린밀수사건은 국회의 대정부질의를 벌이는 데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대정부질의 이틀째 되든날  질의 도중 김두한의원이 총리와 장관을 향해 오물을 투척 하는 사건

    국회프락치 사건이 터지고 그것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 지면서 국민들의 여론은 걷잡을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병철은 재산의 51%를 국가에 헌납 하기로 하고 2000여만원의 벌금과 함께 모든 경영에서 물러 날것을 약속하고 두째 아들인 이창희를 책임자로 구속 하는 선에서 마무리 짖기로 하면서 이사건은 흐지부지 막을 내리게 된 사건이였다.

    후에 이병철은 회고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속았다고 기록 하고 있다.

    당시 일선에서 물러난 이병철 회장을 대신해 이맹희가 삼성의 경영을 맡았지만 6개월 만에 이병철은 그의 무능을 들어  

    삼남 이건희에게 경영을 맡기게 되었고 이후 이맹희와 이병철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 되어 결국 삼성그룹의 후계자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든 

    이맹희씨가 늣닺 없이 2013년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100억에 달하는 선친의 상속재산건으로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형제간의 진흙탕 싸움은 치열했다.

    올해84세인 맏형보다 11년이나 차이가 나는 73세의 이건희 회장은 형 이맹희에 대한 막말논쟁으로 세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 하게 되었고 이후 항고를 포기 하고 동생 이건희 회장과 화의 신청을 하고자 하든중 이건희 회장이 돌연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동생과도 화해하지 못한채 운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명목상으로는 무능으로 밀려 났다고 하지만 이병철회장의 눈밖에 난 실질적인 이유는 사카린밀수에 대한 정보를 이맹희가 언론에 흘렸다는 것이 라고 한다.

    삼성가의 빛과 그림자

    그의 아들 이재현씨가 이끄는 cj그룹은 우리 나라 굴지의 기업으로 탄탄 대로를 달리고 있는듯 했지만 이재현회장은 요즘 배임횡령사건에 연류되어 사법당국에 의해 3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상태이며 현재 그는 유전성질병인 위축성근육병과 신부전으로 신장이식을 받는등 건강이 악화되어 형집행정지상태로 서울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

    세인들은 금수저를 물고 나와 한시대를 떵떵거리며 원없이 살다 가는데 무슨 원이 있을 까 하며 부러운 시선과 따가운 시선으로 삼성가의 아들들에 대해 평가 하지만 삼성의 2대 총수인 이건희회장 역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 1년 이상이나 병원에 식물 인간으로 누워 있다.

     

    그리고 삼성 창업주의 두째 아들이자 새한미디어 회장이였든 이 창희회장의 한평생을 더듬어 보면 세인들이 보듯 그렇게 부러운 일생 이라고 할수 없는 삶을 살다 갖다.

     

     

     

    대부분 삼성의 명성에 걸맞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데 반해 유독 두째 이창희 회장과 그의 두째 아들 이재찬씨의 운명은 삼성가의 빛과 극명하게 대조 되는 삶으로 마감 되었 다는 사실이

    세인들의 가슴을 짠하게 하는것 같다. 

    오히려 평범한 소시민이나 서민보다도 더 곤궁한 삶을 영위하다 갖다는것이 맞는 말인것 같다.

    새한 미디어를 손수 일으켜 세워 한때 재벌가의 대열에 올랐지만 imf로 퇴출되어 몰락하고 그 여파로 두째아들 이재찬씨는 생계마져 곤란을 겪을 정도로 힘들게 지내오다 2010년의 어느날 옥상에서 투신해 세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리고 그의 첫째 아들 역시 지금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는 말이 있으니 가히 삼성가의 운명이 세인들의 생각 만큼 찬란한것 만은 아닌것 같다.

    그 자신도 백혈병으로 타계하고 새한미디어는 세상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도태 하고 급기야 워크아웃 되어 모든 식구들이 비운의 삶을 걷게 된다.

    사실 새한이 어려움에 처해 기울어 갈때 엎어진 사람  밟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건희 라고 한다.


    냉정하게도 새한에 투자된 자금을 일시에 회수해 버림으로 모든 동력을 상실하고 새한은 힘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고 하니 정말 냉혹하고 잔인한 혈육이다. 

    그후 이창희의 두째 아들 이재찬씨의 삶은 단돈 몇십만원이 없어 주위 상가에 외상으로 생필품을 갖다 써야 할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오다 오늘날 노숙자와 같이 빈소마져 차리지도 못한채 쓸쓸한 생을 마감 했다고 한다.


    어떻게 사이가 벌어지고 갈라섰든 이재찬은 자기 형님의 아들이 아닌가?
    피를 나눈 식구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그를 세상은 결코 곱게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아파트에서 뛰어 내릴 만큼 평소 긴박한 삶을 살았다는 상황을 유추해 볼때 그렇게 비폐한 삶을 살아가는 조카의 형편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아도 나몰라라 했든건 아닐까?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다 해도  제대로  주위를 아우르고  함께하는 세상 법칙을 무시한 삶의 가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 하게 만든  이건희회장과  그의 조카의 쓸쓸한죽음은  이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상사람들 가슴에  분명 개운치  않은 기분을  안겨 주었다.

    이런 삼촌 이건희를 보면서 저같은 냉혹함으로 수많은 하청 기업 들에게서  단가 후려치기로 오늘의 삼성을 키운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건희 회장은 부인 홍라희 여사 와의 사이에 1남3녀의 자식을 두고 있었다.

    장남:이재용(삼성그룹 부회장)

    장녀:이부진(호텔신라 사장)

    차녀:이서현(제일모직 사장)

    삼녀:이윤형(26세의 나이로 자살)

    2005년 미국뉴욕의 맨해튼의 호텔숙소에서 유학중이든 막내딸 이윤형이 자살 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건희회장에게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였을 것이다.

    목에 밧줄 흔적외에는 다른 상처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자살로 결론 지어진 일이였다.

    아무리 냉혹한 이건희라 해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고통은 이루 형언키 어려운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지난 메르스사태 당시 서울 삼성병원의 메르스발병율이 타의료기관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고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더 심각해진 서울삼성병원의 사태에 즈음하여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은 전격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문을 통해 국민들께 사과의 메세지를 전하는 모습에서  제주의 호텔신라 이부진사장은 원천적으로 호텔영업마져 중단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건희회장이 자식 농사 하나는 그런대로 지었구나 라고 생각 했다.

    (필자가 포스팅 할 당시의 시점과 박근혜게이트를 거치고 현재 2018년 시점에서의 이재용과 이부진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 보인다.)

    국민들이 국가 지도자급의 사람들에게서 원하는 것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잘못한 일에 대해서 겸허한 자세로 사과와 반성 하는 자세 말이다.


    삼성의 협력업체들은 삼성에 대한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하청기업들은 물론 함부로 입밖에 꺼내어서 불이익을 당할까 거론 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구동성으로 삼성의 쥐어짜기식 불공정 거래로 착취 아닌 착취를 당하고 있음을 은연중 말하고 있다.

    삼성은 공정거래 위원회의 보고 자료에 따르면 국가 공권력인 공정 감사에 대해서 조차 비협조적이며 방해 까지 일삼았다고 한다.

    가히 금력의 무소불위를 보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런 무소불위의 이건희 회장에게도 일시적이긴 하지만 또 한번의 고난의 시간이 찾아온다.

    지난 2008년  경영권 불법 승계와 조세 포탈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의 선고를 받는 힘든 시간을 겪게 된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지고 경영권을 모두 내 놓았으나 채 일년도 되지 않아 이명박대통령은 그를 특별사면 하여 복권 시키는데 그 이유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라고 했다. 


    대한민국 법질서 마져 그의 금력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그가 대한민국에 공헌한  성과와 긍정적 측면을 과소 평가 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국민정서를 무시한 특별 대우마져 받게 해서 불의의 댓가에 대한 국민정서에 반하는 대체될 어떠한 정당성이 부여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창업주 이병철의 세째아들인 이건희는 결단력과 통솔력 모든면에서 이병철의 네아들중 단연 돋보이는 지략으로 이병철 회장의 전격적 신임을 얻어 삼성그룹의 오너자리에 올라 현재의 삼성그룹을 세계11위 혁신 기업으로 키우는데 공헌한 일등공신임엔 틀림 없으며 또한 자신은 그에 걸맞는 부귀영화를 누린것도 사실 이지만 그도 세월의 힘에는 버틸 재간 없이 쓰러져 눕고 말았다.

    지난해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당시 한동안 이건희 회장의 사망설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닐만큼 그의 건강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아침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 인생 인것을 그역시 세상의 섭리에 세인과 다를바가 없는것 같다.

    창업주 이병철의 네째 아들 이 태휘(모:구로다)에 대한 자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이병철 회장의 일본 아내 구로다와 일본 쪽으로 넘어가 살고 있는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6명의 딸들 역시 아버지 이병철의 타고난 피를 이어 받아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엘리트급 생활을 영위 하고 있다고 한다.

     

    삼성 이병철창업주의 자녀(출생순서 대로 정리)

     


    삼성가를 이야기 할때 찬란한 영광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어둠이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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