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망하게 한 독부들 과 경국지색
고대중국 역사의 독부들
고대 중국의 역사에 등장 하는 하나라의 말희 은나라의 달기 주나라의 포사 이 3명의 미인들은 자신의 미색으로 군주들을 현혹 시키고 온갖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부추켜 결국 나라마져 기울게 한 진정한 팜므 파탈들이 었죠
은나라 말 달기라는 후궁은 주왕으로 하여금 참으로 회괴하고 요사스런 놀이를 즐기도록 부추켰는데요 구리로 다리를 만들고 불을 지펴 벌겋게 달군후에 죄인이나 정적들을 이다리위로 걸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뜨거운 구리위를 걷든 사람들이 떨어져 죽어가는 모습을 주왕과 함께 지켜보며 즐거워 하며 주왕의 악마적 근성을 더욱 부채질 했든 포락지형이라는 형벌을 만들도록 했고
주왕의 숙부이자 명재상인 비간이 이런 주왕의 폭정과 방탕함을 보다못해 간언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달기는 성인의 심장은 구멍이 7개라고 하는데 한번 보고 싶다고 주왕을 부추키고 주왕은 애첩 달기의 소원을 들어 주려 숙부인 비간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는 전무후무한 패륜을 저지르게 되었죠 주왕은 달기의 간청이라면 무엇이던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향락을 보다 배가 시키기 위해 큰 연못을 만든후에 배를 띄우고 연못에서 퍼올린 술을 마시고 연못주위의 나무에는 삶은 고기들을 주렁 주렁 걸어 안주로 삼 도록 합니다.
그런 드넓은 연못가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삼천의 궁녀들을 깊은 수렁을 해자처럼 파 도망갈수 없도록 가두고 수백명이 넘는 육신에 흠이 있는 남자들만을 모집해 같이 가두어 둡니다 이들역시 발가벗은 원초적인 상태로 말이죠
술과고기로 인해 취하게 된 이들이 연출해내는 장면들 온갓 회괴한 변태적 장면들이 연출 되는 것은 필설로 형용키가 어려워 더이상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높은 망루에서 왕과 함께 바라보며 음란한 욕정을 나누는 달기의 사디즘적 욕구는 주왕의 가학적 변태 성욕을 부추키며 끝없는 향락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원래 이것은 하나라 마지막 왕 걸왕과 첩비인 말희라는 독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놀이 이며 은나라의 주왕이 달기와 함께 전철을 밟게 되고 결국 똑같이 나라가 망하게 되는 형국을 초래 하게 되는 데요 이 놀이를 가리켜 주지육림 이라고 하죠
하나라 걸왕이 말희 라는 독부의 요염한 미색에 빠져 온갖 향락과 공포정치를 일삼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성탕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나라 마져 잃게 됩니다.
탕왕 에 의해 건국된 은나라 역시 마지막 주왕때 달기라는 독부로 인해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나라를 치고 건국한 주나라 역시 경국지색에 의해 망하게 되는 전철을 밟습니다.
주나라 마지막 유왕 역시 포사라는 독부가 왕의 첩비로 총애를 받게 되는데요 포사는 유왕앞에서 웃는 일이 없었죠 포사에게 푹 빠져 있는 유왕에게 있어 포사가 웃을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절대권력자인 왕이라는 자리에 있는 유왕으로서 그녀를 위한 일에 몰두 한다는것은 엄청난 국력을 쏟는 일이 되는 것이죠
하루는 시녀가 실수로 비단을 찟는 것을 본 포사가 쌩긋 웃었는데요 이렇게 웃는 포사의 모습을 본 유왕은 그녀를 위해 매일 동원 할수 있는 최대한의 비단을 포사를 위해 강제로 거둬 들이게 되고 엄청난 양의 비단은 단지 한여인의 생긋 웃는 모습에 의해 아무 쓸모도 없이 찟어져 나가게 되었고 결국 백성들의 원성은 날로 높아만 갑니다.
그러나 포사는 그져 생긋 정도의 웃음만 보여 주어 유왕이 바라든 것에는 못미쳤든 것이죠
그러던 어느날 려산에서 봉화불이 피워지고 전쟁이 난 줄로 알고 전국의 제후들이 려산앞으로 집결 하게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든 포사는 잇몸이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습니다.
유왕은 생전처음 으로 이렇게 활짝 웃는 포사를 보고 그만 사랑에 겨워 어쩔줄을 모를 정도로 좋아 합니다.
그렇게 포사의 웃는 모습에 매료된 어리석은 유왕은 전쟁시에 만 올려야 할 봉화를 시도 때도 없이 올려 되니 제후들은 단지 여인하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이런 터무니 없는 유왕의 어리석은 행위에 더이상 반응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간파하여 포사에게서 난 아들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게된 세자의 모후는 아버지가 있는 신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왕비의 아버지 신후는 려나라와 견융족들과 연합하여 주나라를 공격 하게 되고 이번에는 적이 침입해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를 피워 올렸지만 거짓봉화라고 생각한 제후들은 아무도 도우려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유왕은 자결 하고 주나라는 멸망 하기에 이러릅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렇게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가 나란히 경국지색의 독부들에 의해 똑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나라는 당장 망하지는 않았지만 말에 이르러 유왕의 실정으로 조정은 어지러워지고 결국 나라는 이름뿐인 허수아비 나라로 전락 하게 되었고 이렇게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전국의 힘있는 제후들이 스스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면서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 우후죽순 처럼 생겨난 나라의 수가 800이나 되었 다고 합니다.
춘추시대의 경국지색 서시를 빠뜨릴수가 없어 춘추시대의 배경과 역사들을 되짚어 봅니다.
유왕이 죽고 그의 아들 평왕이 즉위 하면서 주나라는 도읍을 동쪽인 낙읍으로 천도를 하게 되었고 서주 시대는 유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죠
유왕의 뒤를 이은 평왕은 앞에서 언급했든 포사로 인해 쫏겨난 왕비 신후의 아들로 폐세자 였든 희의구로 외조부의 도움으로 동주시대의 첫 왕이 됩니다.
동주 역시 천자국의 이름만으로 존재 하는 허수아비 나라가 되어 버리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춘추전국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춘추시대라 일겉는 시기는 주로 공자의 저서 춘추에 역사가 기록 되어져 비롯된 말로 서주가 멸망하고 동주가 시작되는 시기 부터 황하 북쪽의 대 제후국인 진나라로 부터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가 분리 독립한 시기 까지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시기에는 존왕양이 즉 천자국인 주나라 왕실을 존중 하며 오랑캐를 배척 한다는 나름의 명분으로 크고 작은 제후국들이 서로 다투어 일어난 시기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자 노자 맹자 순자 장자 같은 현인들이 대거 등장 하였는데 이들을 가리켜 제자라 일컬으며 그들을 따랐든 제자들을 백가라 칭하게 되는 제자백가의 시대였습니다.
전국시대로 접어드는 시기는 진나라로 부터 분리 독립한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가 패권을 잡는 시기부터 진나라가 통일을 완성한 시기까지를 말하며 주로 전국책을 통해 역사가 기록되어 졌다 하여 전국시대라 일컽게 된 시기 입니다.
이때부터는 명분상의 존왕양이 마져 사실상 무실하게 되고 천자국 주나라는 이름 뿐인 나라로 전락하는 시기로 힘있는 제후국들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게 됩니다.
춘추5패 전국7웅 이란 이시기에 패권을 장악한 나라들로서
춘추5패는 제헌공 진문공 초장왕 오왕합려 월왕구천을 일컽게 됩니다.
전국7웅은 진나라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 연나라 제나라 초나라를 가르키고 있는데요
춘추5패중 2패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이시기에는 거의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 큰 특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일단 춘추 시대의 절색가인 이였든 서시를 이야기 하기 위해 춘추시대를 알아 보도록 합니다.
춘주5패는 춘추시대 활거하든 제후국들로 여러 크고 작은 국가들을 제압하고 천자국인 주실로부터 패권국임을 인정받아 회맹의 맹주자리에 오른 국가의 군주들을 말하는것으로 제나라에 이어 북쪽의 진나라가 패권국이 되는데요 진나라는 후에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며 제국으로 우뚝서게 되는 최초의 통일제국의 발로라고 할수 있는 나라이며 문공에 의해 패권국이 됩니다.
다음으로 중국의 황하 남쪽 지방을 기점으로 세력을 키워 강대해진 초나라가 장왕에 이르러 패권국이 됩니다.
그리고 멀리 남방쪽에서 갑자기 등장하여 중원을 노리는 두나라가 있었는데요 오나라와 월나라 로 이들의 등장은 예기치 않을 만큼 갑작스런 일이였고 삽시간에 두나라는 강대 해지면서 중원으로 세력을 확장 해 옵니다.
오나라 합려는 진나라의 속주로 있든 여러 제후국들을 차례로 굴복시키고 마침내 다음 패권국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 오나라에 팽팽히 맞서며 언제나 자웅을 겨루고 있는 나라가 있었는데요 구천이 이끄는 월나라로서 오나라와 월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양립해 있는 인접 국가 였습니다.
그런 월나라를 맞아 오나라의 합려는 취리전투에서 대패 하고 전쟁중에 입은 부상으로 결국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는 아들 부차에게 자신의복수를 다짐하는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일념으로 스스로의 다짐을 게을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열명의 시종을 선출해 이들로 하여금 인사 대신 취리의 전투에서 전사한 아버지가 남긴 유언을 말하도록 하고 자신은 마치 아버지의 유언을 받드는 당시 상황을 연출 하면서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사성어중 에 나오는 와신의 유래가 됩니다.
결국 부차의 이런 끈질기고 강한 집념과 그의 뛰어난 모사 오자서와 손자병법으로 잘알려져 있는 대전략가 손무에 의해 월나라의 구천을 쳐서 대승을 거두고 오나라에 패한 월왕 구천은 그의 신하를 자처하고 부차에게 경국지색의 미색을 지닌 여인 서시를 선물로 바치는데요 일각에서는 서시가 중산에서 땔감을 팔든 여자라고도 하고 남의 빨래 일을 하든 사람 이라고도 하고 구천의 딸이라고 하는 고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하튼 구천이 부차에게 진상품으로 바쳐진 서시의 미색은 가히 천하 일색이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죠
중국의 4대 미인중 일인이며 중국의 4대 미인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 초선
을 꼽고 있습니다.
하나라 말희나 은나라 달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미색으로 경국지색이라 할 만 한 미인 이였습니다.
말희나 달기 포사 같은 경국지색의 미인들을 리스트에 올리지 않는것은 이들은 미색으로는 경국지색이지만 너무도 악독했기 때문 이죠
천하절색 서시는구천이 아들과 딸을 인질로 부차에게 보냈다는 고증적인 문서에 의한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서시가 구천의 딸이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할수 있을것입니다.
이때의 구천의 심경은 생지옥 속에 던져진 고뇌와 오욕의 나날들이였을 것입니다.
젊은왕 구천에게는 범려와 대부 문종 이라는 당대의 뛰어난 모사꾼이 있었는데요
오왕 부차에게 오자서와 손무가 있다면 월왕 구천에게는 범려와 문종이 있었든 것이죠
경국지색 서시를 바친것도 범려의 계략이였는데요 당시 전쟁에서 목숨이 풍전등화 지경에 이르렀든 월왕 구천을 살려 내기 위해 오왕부차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미인을 상납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간파 한것이지요
경국지색 서시를 갖다 바치는 한편 구천은 스스로 오나라에 들어가 인질이 되어 오나라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거짓 충성으로 부차를 속이고 2년여만에 본국으로 돌아 옵니다.
겉으로는 굴종적인 모습으로 부차의 눈을 속이면서 구천은 자신의 식탁위에 쓸개 주머니를 걸어두고 식사때마다 쓸개즙을 핥고 이를 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를 20여년 이였고 드디어 그 기회가 찿아 옵니다.
상담이란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 된 것이죠
와신 과 상담이 합하여진 와신상담이란 고사성어는 복수의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지난날의수모를 잊지 않으려 어렵고 힘든 현재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고사성어 입니다.
일찌기 부차의 책사 오자서는 이런 구천의 속내를 간파 하고 부차에게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무수히 간언을 올렸지만 범려와 문종의 반간계 계략으로 부차 진영의 대신 백비를 움직여 구천의 목숨을 지켜 내는데 성공 하였는데요
이러한 범려의 비상한 노력에 견주어 오자서는 사사건건 태제 백비와 맞부딛히게 되었는데요 당대의 책사 오자서를 부차로 부터 실각 토록 범려가 반간계로 백비를 뒤에서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 였습니다.
급기야 그는 범려의 반간계에 의해 부차로부터 자결 하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내가 죽거든 내목을 동문 망루에다 걸어 월의 군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게 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어간 오자서의 말대로 방심한 부차가 진나라 와 맹주임을 다투는 전쟁으로 나라를 비운 사이 구천의 군대가 부차의 궁성을 접수하고 부차를 사로잡아 자결토록 합니다.
"아 내가 자서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것이 참으로 원통하구나 저 세상에서 자서를 볼 면목이 없도다"
오자서는 서시가 오나라에 처음 왔을때 서시의 미색을 보고 크게 걱정하며 부차에게 간언하여 말하기를
"전하 같이온 정원의 미는 경성지미 라 그를 데려옴은 합당 하나 서시는 경국지색이라 전하의 성총이 흐려져 온전한 국정을 펼칠수 없을것으로 사료되어 그를 데려옴은 불가 한 일이라 감히 아뢰옵니다."
과연 서시의 미색은 성총을 흐리기에 충분 했는데요 그녀는 평소 가벼운 심장병으로 인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든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찌푸리는 미간으로 인해 왕과 대신들이 녹아 내릴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는데요 이런 그녀의 습관을 많은 여인들이 흉내 내었다고 할 정도로 서시는 천하 절색이였든 것입니다.
오자서는 그런 서시의 미색은 나라마져 삼킬수 있음을 간파 하고 데려오지 말것을 간언 하였든 것입니다.
그러나 서시의 미색에 한눈에 빠져 버린 부차는 오자서의 이 충언이 귀에 들어 올리가 없었든 것이죠
부차는 칼로 자신의 심장을 찔러 자결 하기 직전 오자서가 지난날 왜 그토록 서시를 경계 하라 하였는지를 생각하며 최후를 맞이 하게 됩니다.
이렇게 경국지색 서시로 총기를 흐리고 태제 백비를 움직여 부차의 마음을 느슨하게 한 범려와 문종의 반간계의 계략으로 월나라는 회복되고 얼마지않아 구천은 춘추5패의 마지막 패권을 이루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서시는 범려의 애인 이였다고 하며 부차가 죽고 구천이 서시를 데려 오라고 했을때 범려는 이미 그녀를 빼돌린후 서시가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거짓을 고하고 벼슬에서 물러난후 그녀를 데리고 같이 살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서시를 가리켜 경국지색이라고 할수는 있지만 서시는 말희 달기 포사와 같은 독부라고 하지는 않고 있는데요 서양의 절색 클레오파트라 처럼 서시 역시 군주를 부추켜 악독한 정치나 방탕한 생활을 조장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여기서 범려는 사냥개가 토끼사냥을 마치게 되면 그 주인은 개를 솥에다 삶고 활과 화살은
어두운 곳간으로 들이게 되는 것이라는 토사구팽이라는 말로 대부 문종에게 함께 구천의 곁을 떠나자고 합니다.
"대왕은 고생은 같이 나눌수 있는 사람 이지만 즐거움을 함께 나눌수 있는 인물이 못되니 함께 떠납시다"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말을 듣지않았고 범려의 예언대로 훗날 구천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이같이 범려는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뛰어난 현자 였든 것이죠
토사구팽이란 말이 이때 처음 쓰여 졌지만 훗날 한나라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일등 공신 이였든 한신이 유방에 의해 요참형으로 최후를 맞이 하기에 이르러 범려가 한말을 그대로 읊으며 죽었는데요
범려가 말한 토사구팽 이란 고사성어는 이 말을 인용하며 죽어간 한신에 의해 널리 알려 지게 됩니다.
서양의 역사를 바꾼 경국지색 클레오파트라
경국지색이란 한자어로서 뜻 그대로 나라를 기울게 할 미색을 의미 하는 것이죠
일찌기 서양에는 가장 강력했든 제국인 로마제국이 있었죠 그렇게 서양을 통치한 강력한 로마제국의 절대 권력자 두명을 자신의 미색으로 농단 하여 결국 이들을 파멸 시킨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남편 프톨 레마이우스13세와 로마의 전임 군주인 가이사르 율리우스와 후임 군주인 안토니우스 이들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유지 하는 방편으로 삼았든 클레오 파트라 그녀의 코가 한치만 낮았드라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 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남자들을 강하게 매료 시키는 성적인 매력과 탁월한 미색을 지녔든 이집트 여왕 이였습니다.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절대 권력을 지녔든 로마의 군주들마져도 사로 잡았고 미색에 빠져 총기가 흐려진 두명의 군주들은 그녀에게 빠져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의 정적들에 의해 제거 되어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치명적 아름 다움으로 남자를 사로 잡은뒤 파멸 시키는 여인을 가리켜 팜므 파탈 이라고 합니다.
클레오 파트라는 서양역사를 바꾼 팜므 파탈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수가 있는데요
그러나 클레오파트라 의 경우를 들어 독부나 요부로 지칭 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그녀가 이들을 파멸 시키기는 했지만 이들을 불손한 의도로 부추기거나 농락 했다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죠
다만 그녀의 권력에 대한 욕망에 그들이 스스로 편승해 운명의 사슬에 빠졌든것 뿐이죠 마치 불을 보고 날아든 불나방 처럼 자신의 운명을 던지면서 까지 빠져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클레오파트라는 미인 이였든 것이죠
오늘은 동서양의 경국지색과 고대 중국의 독부들 그리고 춘추전국 시대의 역사와 배경등에 대해 대강의 내용들을 포스팅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