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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과 사후 세상 축복된 죽음이 되도록 살자

    2014. 10. 10. 23:24   블로그와 감성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어가든 그사람이 그토록 갈망 하든 내일이다."


    누가 설파 한 말인지는 몰라도 기가막힌 표현이다.


    죽음태양은 직시 할수 없다 고 도 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탄생하는 순간 부터 이미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다.


    "사람이 나면 죽는것은 정한 이치 이며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궂이 성경구절을 인용하지 않드래도 인간이 태어나면 죽는다는 증거와 증명과 목격의 체험에 대한 사실보다 더 확실한 증좌와 진리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에 관한한 암묵적으로 무시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수 있으며


    마치 천년 만년 이라도 살것처럼 계획하고 채울수 있는한 최대한의 욕심을 부리고 죽음과 나는 별개처럼 여기며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려 하는 인간들이 부지기수 로 많다 는 것을 우리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고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전에 자신의 생명의 위독함이 이르기 전 까지는 애써 죽음을 바라보지 않지만 막연 하게 라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적 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 해 보려 많은 사람들은 종교에 귀의 하기도 하며 종교에 광신적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목전에 다다른 위급한 순간이 아닌 이상 자신은 아직 죽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도 자부 하며 사는 인간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마치 바로 바라 보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그자리에  있는 태양과 같이 언제나 강하고 무서운 검은빛을 발하며 그자리에 존재 하고 있는것이 죽음 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 조차 않으려 애써 외면 해 보지만 막연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는 표현이 옳은것 같다.


    왜 그토록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명확 하게 보여준 사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여러 종교에서 설파 하는 사후 세계에 대한 막연한 추상적 개념의 상상도는 떠올려 볼수 있으며


    많은 종교단체들은 전도를 위해 목적성 사후세계와 심판을 만들어 인간들을 두렵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증파 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을수 있는 사후세계를 추상적 으로 그려서 제시 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 어떤 종교도 실체를 보여준 사례는 없다. 


    그렇게 진정한 사후 세계의 실체를 직접 보여준 종교는 없는 것이고 보면 죽음 이후의 세계는 그야말로 칠흙처럼 캄캄한 무 정보의 세계이기에 두려운 것이 아닐까?


    그리고 사는동안 이세상에서 만들어진 익숙함과 추억과 정든 사람들과 정든 물건들 이 모든것으로 부터 한순간 완전한 결별을 하는것


    다시 되돌아 볼수 없는 조금의 미련도 가질수 없는 완벽한 이별


    그리고 아무도 함께 따라 가주지 못하는 혼자만의 길 이라는 것 이러한 것들이 죽음을 더 두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


    그러나 아무리 발버둠친다 해도  피해갈수 없는것 이다.

    "너는 흙에서 왔으니 필경 흙으로 돌아 가리라"
    성경의 한구절 처럼 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 한다.


    헤르만 헤세는 죽음은 마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새 처럼 태어나기 전의 알속을 세상으로 생각 하고 있다 알 밖으로 나오는 것과같이 이 세상은 알속이며 사후세계는 죽음이라는 알을 깨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 까 라고 자기 나름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사람이 대 문호이며 현자 라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하는 죽음의 의미 역시 정답이 될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의 제시를 해 주는 의미 일 뿐이다.

    그렇지만 한번 깊이 생각 해 볼수 있는 의미 임엔 틀림 없는것 같다.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독립적 세계가 내재해 있으며 그 내재된 세계는 무한한 우주와 같이 넓고도 넓은 것이다.


    그래서 인간 한사람 한사람이 다 작은 우주라고 하지 않든가


    그러므로 모든 생각하는 사람마다 죽음의 개념은 다를수도 있으며 자기가 느끼는 바의 죽음이 바로 죽음의 개념이 되는 것이라고 필자는 여겨 지며 한가지 신빙성 있는 사실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의 최후는 얼굴에 공포의 흔적을 남기며 덕을 쌓은 사람의 죽음은 안온함과 편안함을 나타내며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실증적 사례집을 통해 드러난 객관적 통계이며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세상 먼지 같은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면서 자비도 긍휼도 없이 살지 말고 좋은 일 많이하다 가면 축복된 죽음을 맞이 하지 않겠는가?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불쌍히 여김을 받을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 부를 것임이요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일부 구절은 생각이 나지 않아 생략 합니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으로 예수님이 그를 따라 모여든 수많은 무리들에게 처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설파 하면서 하신 성경 구절들 중 일부 입니다.


    이 말씀을 잔잔히 묵상해 보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수가 있는 대목 인데요 성경 구절중 참으로 가슴 가득 채워지는 구절 같아 즐겨 생각 하는 구절들 입니다.


    종교를 떠나서라도 가슴 깊이 새겨두면 인생사의 훌륭한 길잡이 역활을 해 주므로 여기에 인용 해둡니다.


    비록 죽음이 두렵고 낮설지만 또다른 우주로의 도약 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죽음을 두려워만 할것이 아니라 또다른 축복의 개념으로 편안히 맞이 할수도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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